어떤 새로운 나를 꾸려갈지 계획하고 쌓아가던 2023년이 어느덧 완성을 앞두고 있습니다. 올해의 님은 어땠나요? 저는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잡아내며 계획한 날들을 지켜내기 위해 분주한 한 해였는데요. 어린 시절에는 마음 넓게 넘치는 시간을 내주던 한 해가 나이가 들수록 어찌나 빠르게 가버리던지요. 얼마 전 좋아하는 뇌과학자의 영상에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. 물리학적 시간은 측정하는 것일 뿐 뇌가 느끼는 시간은 나의 ‘경험’이 쌓이면서 흐른다는 것. 새로운 경험이 가득한 초심자에게 더 긴 시간이 주어지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죠.

이미 무딘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짧은 시간을 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. 우리의 곁에 새로운 세상을 품에 안은 수많은 책이 있으니까요. 부딪히는 경험이 아니어도 글귀로, 이미지로, 때론 상상으로 선명한 경험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. 스치듯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내 시간의 템포는 나만이 조율할 수 있죠. 여러분의 한 해는 책을 곁에 둔 덕에 느린 삶이 되었기를 바라며 이 레터를 보냅니다.

🍓 by.베리

제가 자주 차는 손목시계는 3년을 주기로 약을 갈아줘야 합니다. 며칠 동안 움직이다 말다 하더니, 이제는 언제인지도 모를 시간에 시침과 분침이 멈춰 작동하지 않습니다. 이 시계는 친언니 K가 결혼하면서 형부로부터 건네받은 예물이에요. 작고, 심플하고,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이 금빛 물건을 좋아했습니다. 이십 대 초반부터 차기 시작해 벌써 저와 함께한 지 7년이 된 이 손목시계는 지금까지 두 번 멈췄습니다.

‘이 시계가 언제 멈췄더라…?’ 생각하다보면, 자연스럽게 지난날을 훑어보게 돼요. 순진무구 대학생이 매콤새콤한 n년차 직장인이 되기까지 딱 4년. 재빠르게 바뀌는 것 같은 삶 속에서 중심을 잡으며 사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.

모두 따뜻한 연말 보내고 계시나요? 고요한 크리스마스 아침 펑펑 내리는 흰 눈을 마주하니, 마치 잔잔한 크리스마스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. 가족과 친구, 동료와 함께 한 해를 돌아보니 올 한 해도 참 바쁘게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. 

님은 바쁠수록 더 챙기는 것들이 있나요? 저는 바쁠수록 하루에 대한 짧은 일기를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. 마음속 둥둥 떠다니던 하루를 글로 정리하면 조금 더 차분하고 먼 시선에서 일상을 바라볼 수 있어요. 대니 샤피로의 "계속 쓰기"에서처럼 바쁘고 정신없는 순간일 수록 써 내려가며 나만의 언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?

🌸 by. 해나